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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
바냐 아저씨 & 벚꽃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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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 아저씨 & 벚꽃동산
한 마디로 표현하는 안톤 체호프
바냐 아저씨
우리가 뽑은 바냐 아저씨의 명 대사 1,2,3
바냐 아저씨에 대한 총체적 의견
벚꽃 동산
우리가 뽑은 벚꽃동산의 명 대사 1,2,3
벚꽃동산에 대한 총체적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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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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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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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뽑은 바냐 아저씨의 명 대사 1
보이니츠키
일생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무의미한 삶을 보내는 바냐는 생기 넘치는 옐레나에게서 흘러간 젊음의
향기를 맡는다. 옐레나가 제발 그만하라고 하자 그녀를 사랑하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말할 만큼
바냐에게 이 사랑은 희망 없는 세상에 유일한 기쁨이다.
그가 몸바쳐 희생했지만 실상은 허울뿐이었던 세레브랴코프 교수는 바냐의 누이가 죽자,
훨씬 젊고 아름다운 옐레나를 데리고 나타났다.
바냐에게 옐레나란 붙잡고 싶은 젊음이자, 자신의 삶을 망친 원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일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겠소
당신은 나의 행복이고, 생명이고, 나의 흘러간 젊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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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뜨롭의 위와 같은 대사는 등장 인물들이 놓인 현 상황을 투사하는 듯 하다.
바냐 아저씨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은 웃음과 행복감이 넘쳐흐르는 삶을 살아가기 보다는,
무미건조하고 무료한 일상을 지속하는 듯 보인다. 세례브라꼬프는 한때 교수였고 젊은 아내를
얻었지만 건강을 잃은 병약한 환자이고 옐레나는 젊고 아름다우나 자기 자신을 서글픈 단역
같…(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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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 생각을
해볼 수도 있지만 바냐 아저씨에서 갈등이 가장 극적으로 치닫는 3막의 이 부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냐 아저씨, 즉 보이니츠키의 회한과 비통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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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 아저씨에 대한 총체적 의견
삶을 지탱해주던 끈이 끊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무언가를 지니고 살아간다.
바냐에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 원동력이자 그 끈이 되어주었던 것은 바로 세레브랴꼬프가 아니었을까 그에 대한 동경, 그가 쓴 저서들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그가 자신의 가족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희망으로 살아온 바냐. 하지만 그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며 찾아온 허망함과 비탄. 바냐 아저씨를 통해 우리는 지금 믿고 있고, 지금 가지기 위해 애쓰는 무언가가 정말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체홉은 평범한 일상을 그려내면서,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감정을 끄집어내고자 했다. 바냐 아저씨에 달린 ‘전원생활의 정경’이라는 부제처럼, 멀리서 보면 세상은 언제나 평온하기만 하다. 바냐가 미쳐 날뛰더라도 세레브랴꼬프는 그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 대한 배려 따위는 마치 없다는 듯 ‘그래요. 내가 화해하죠. 하지만 그 사람 행동이 이상한 건 사실이잖아’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이 우리가 익히 아는 삶이다. 우리는 차가운 현실에 분개하지만 결국은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체홉은 위로한다. ‘그래도 믿어요. 우리는 언젠간 쉴 거예요.’라고. 인생의 종착지로 향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는 삶의 존재들에게 체홉은 우리가 매 순간 호흡하고 있음을 일깨워주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길고 긴 낮과 밤을 쉼 없이 살아가는 존재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삶에 대해 고민하며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체홉은 바냐 아저씨를 통해 이렇게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삶의 주체자로서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