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14년인 1432년에 대대적인 천문·기상의기 제작사업이 세종의 명에 의해 시작되었다. 장영실은 당시 중추원사(中樞院使)였던 이천을 도와 간의대 제작에 착수하는 한편 여러 가지 천문의기 제작을 감독하였다. 그로부터 1년이 채 안된 세종 15년(1433)에 장영실은 그 능력을 인정받아 5품이던 상 의원 별좌에서 4품인 호군(護軍: 조선시대 5위의 정 4품 무관)에 오르는 영예를 안기에 이르렀다. 이해에 혼천의(渾天儀) 제작에 착수하여 이듬해인 1434년에 완성하였는데 혼천의는 선기옥형(璇璣玉衡) 또는 혼의(渾儀)라고도 불리는 일종의 측각기로 적도좌표를 관측하고,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데 쓰였던 의기였다.
그러나 혼천의는 관측용과 실내용 혼천시계의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세종실록」에 의하면 이때 장영실이 만들었던 것은 실내용 혼천시계로 보인다. 이 혼천의는 세종 14년(1432)에 시작된 여러 천문의기 제작사업 중에서 가장 먼저 완성을 본 의기(儀器)였으며 간의(簡儀: 기능이 많아지고, 구조가 복잡해 진 혼천의에서 적도환, 백각환, 사유환의 세 고리만을 떼어 간략히 만들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임) 등 다른 많은 의기들의 모태가 된 기구이다. 이 혼천의 제작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세종은 혼천의의 완성을 위하여 세종 3년(1421)에 장영실과 윤사웅을 명(明)에 파견하였고, 세종 13년(1431)에는 수학자를 명에 파견하여 그 기술을 습득해 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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