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는 1377년 큐우슈우에 가서 왜구를 단속하고 고려백생을 귀국시켰고, 1380년 이성계와 함께 전라도 운봉에서 왜구를 토벌했다. 그는 국제감각이 탁월한 외교가이며 문·무를 겸비한 명재상이었다.
- 당시 중국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탁월했음.
- 정도전이 성리학에 눈에 뜰 수 있게 지도해줌.
- 정도전은 정몽주가 보내준 ‘맹자’책을 하루에 반페이지 이상 넘기지 않을 정도로 정독함.
- 맹자의 사상에는 당시 무서운 혁명사상이 있어, 정도전은 그것을 읽고 당시 어지러운 고려 말 시대에 혁명의 꿈을 키움.
* 공자와 맹자의 차이점
공자(孔子)는 체제의 변혁보다 인간의 심미적 완성에 관심이 컸다.
맹자(孟子)는 철두철미(徹頭徹尾) 사회적 관심 속에 혁명(革命)을 말한다. <맹자(孟子)>라는 책은 당시 공산주의(共産主義)보다도 더 무서운 혁명의 책이었다.
* 고려 말 상황
- 어떤 땅이 있다면, 그 땅의 경작물(耕作物)의 절반씩 소작인과 지주가 나눠 갖음. 그리고 국가에서 세금으로 지주에게서 10%를 걷어감.
=> 즉, 모든 상황을 10으로 놓고보면,
소작인: 5 , 지주: 4 , 국가: 1
옛날 관리들의 봉록(俸祿)이란 수조권(收租權)을 의미함.
- 즉, 국가에서 그 지역 관리에게 10%를 받아먹으라고 하는 것을 의미
관리는 퇴임 후에 땅에 대한 소유권(所有權)은 없다해도 수조권은 계속 유지했다. 물론 이것은 불법관행이었다.
- 사또가 물러나고 새로 사또가 임명되었어도 그 전 사또는 계속 그 10%의 받음. 그리고 국가에서는 새로온 사또에게 10%를 받을 권한을 임명해 줌. 그리고 그 사또가 죽으면 그의 아들, 손자 대대손손 계속 받아먹음.
이렇게 되면 한 토지에 9명의 권리가 있는 경우가 많음. 쌀 10가마를 생산했으면 9가마를 관리들이 갖고 감.
당…(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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