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 안톤 체호프의 6호실
`작가 소개`
안똔 빠블로비치 체호프는 1860년 남부 러시아의 항구 도시 따간로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고 보수적이었으며 어머니는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여인이었다. 어린 시절 전제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났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밝은 성격을 가졌으며 16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파산한 이후 고학으로 중등학교를 마치고 모스크바 의과대학에 입학한다. 대학입학 이후 그는 생계유지를 위해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거나 희극적 소품을 쓰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문학활동의 출발점이 된다. 처음 그는 일상의 정경묘사나 위트를 주제로 한 작품 속에서 우스꽝스러운 인생을 나타낸다. 특히 그는 간결성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예리한 관찰력과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을 발표한다. 그리하여 그는 ‘단편의 대가`라는 명예를 얻게 된다. 그러난 그는 점차 유머의 테두리를 벗어나 「슬픔」과 같이 인생을 깊이 통찰한 서정적인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는데 이 점에 주목한 작가가 그리고로비치였다. 그리고 그는 수보린에 의해 「대신문」지에 발탁되면서부터 작가로서 확고한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1880년대 후반 체호프는 그의 작품의 무방향성과 무사상성을 비판하는 비평가들로 인해 고민하게 되고 1889년 희곡 「숲의 요정」의 실패와 둘째형의 죽음으로 인해 염세적인 사상에 빠지게 된다. 그러자 이듬해에 별안간 사할린 여행을 결심한다. 8개월간에 걸친 여행은 그에게 일종의 전환기가 되어 자기 회복의 계기를 가져왔으며 이 여행에서 그는 논쟁과 사실과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가 공격받은 무주의와 무사상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성실성과 진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작가의 창조적 근원임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이전에 그가 영향을 받은 톨스또이 철학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한때 악에 대한 무저항의 철학이나 톨스또이의 도덕에 한때 매료되기도 했으나 수인들의 고통과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모습을 본 그는 톨스또이의 사상이 실제 인간의 삶을 무시한 헛된 공론이라는…(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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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히게 된 인물이다. 6호실은 언제나 외부와 차단이 되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의사가 자주 이곳을 방문하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이 병원의 의사인 안드레이 예피무이치 라긴은 아버지에 의해 자신의 뜻인 신학 공부를 포기하고 의학 공부를 하게 된 인물로 부임 이후 무질서하고 비도덕적인 병원의 모습을 느끼면서도 언제나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으며 오로지 독서와 사색에만 열중하며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환자인 모이세이카와 함께 병동으로 들어가게 된 그는 병실에서 그로모프를 만나 대화를 하면서 그에게 흥미를 느끼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일상적 습관에서 벗어나 매일 그와 서로의 사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행동에 대해 보좌의 호보토프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그를 정신이상이라 여기게 된다. 이에 라긴은 결국 퇴직을 권고 받게 되고 우체국장 아베랴느이치의 권유로 함께 여행을 떠나지만 아베랴느이치의 행동과 이야기에 라긴은 시종 추악함과 답답함을 느끼며 여행에서 돌아온다. 그후 라긴은 병원을 떠나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 전처럼 독서와 사색을 즐기지 못하였고 퇴직금을 못 받은 현실에 모욕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호보토프와 아베랴느이치의 병 문안을 받은 라긴은 이야기 도중 갑자기 화가 치밀어 흥분하며 그들을 쫓아내게 되고 이후 호보토프에 의해 그는 6호실에 갇힌다. 병실에 갇힌 라긴은 처음에는 지금의 상황이 아무런 변화도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해가 이미 기울어진 밤에 창문을 통해 감옥을 바라보면서 저것이 현실임을 깨닫고 그 순간부터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혀 결국 병실에서 나갈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의 이 행동은 니키타에게 제지를 당하고 라긴과 그로모프가 함께 강하게 저항하자 니키타는 폭력을 휘두르고 라긴은 비로소 고통에 대해 그 동안 자신이 몰랐던 사실과 관념조차 없었음을 깨닫지만 그만 실신하게 된다. 다음날 저녁 그는 뇌일혈로 결국 사망하고 이틀후 아베랴이느치와 다류쉬까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