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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정효공주 묘지,발해사를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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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발해역사의 주인은
중국의 동북공정
정혜, 정효공주의 무덤
두 무덤의 위치가 다른 이유
정혜, 정효공주의 묘비문
통치방식을 상징하는 표현, 연호
발해의 정치적 격변기에 돌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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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역사의 주인은
한국과 중국러시아의 견해차이
≪구당서≫ `발해말갈전` ‘고려별종’
≪신당서≫ `발해전` ‘속말말갈출신으로 고구려에 복속된자’
≪속일본기≫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
발해인이 직접 남긴 기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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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역사의 주인은- 중국의 동북공정
동북공정 :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의 줄임말
중국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2006년까지 5년을 기한으로 하는 중국의 연구프로젝트
주목적 : 영토분쟁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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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공주의 무덤
1949년 돈화의 계동중학과
연변대학 역사과가 길림성
돈화시 육정산에서 발굴
돌사자상
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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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공주의 무덤
1980년 길림성 화룡현 용두산에서 발굴
벽화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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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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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공주의 무덤 위치가 다른 이유는
정혜공주- 발해의 첫 수도 동모산 부근의 길림성 돈화시 육정산
정효공주- 발해의 두번째 수도 중경으로 비정되는 길림성 화룡시 서고성 부근의 용두산
배장- 신하나 처첩의 운구를 임금이나 남편의 무덤 옆에 묻는 것
정혜공주-3년상,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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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같아지려고 하였고,
매번 한 반소를 사모하여 시서를 좋아하고 예약을 즐겼다. 총명한 지혜는 비할 바 없고, 우아한 품성은 저절로 타
고난 것이었다.
▨▨好仇嫁于君子. 標同車之 義家人之永貞柔恭且都履愼謙謙簫樓之上韻調雙鳳之聲鏡臺之中舞狀兩鸞之影, 動響環, 留情組. 藻至言琢磨潔節繼敬武於勝里擬魯元於豪門琴瑟之和蓀蕙之馥
공주는 훌륭한 배필로서 군자에게 시집갔다. 그리하여 한 수레에 탄 부부로서 친밀한 모습을 모였고, 한 집안의 사람으로서 영원한 지조를 지켰다. 그녀는 부드럽고 공손하고 또한 우아하였으며, 신중하게 행동하고 겸손하였다. 소루위에서 한 쌍의 봉황새가 노래부르는 것 같았고, 경대 가운데에서 한쌍의 난조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움직일 때면 몸에 단 패옥이 소리를 냈고, 머물 때면 의복의 띠를 조심하였다. 문장력이 뛰어나고 말은 이치에 맞았으며, 갈고 닦아서 순결한 지조를 갖추고자 하였다. 한 원제의 딸 경무공주처럼 아름다운 봉지에서 살았고, 한고조의 딸 노원공주처럼 훌륭한 가문에서 생활하였다. 부부사이는 거문고와 큰 거문고처럼 잘 어울렸고, 창포와 난초처럼 향기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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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해석-정혜공주
誰謂, 夫先化. 無終助政之謨. 稚子又夭, 未經請之日. 公主出織室, 而灑望
空閨. 而結愁六行, 孔備三從. 是亮學恭姜之信, 矢銜杞婦之哀悽. 惠于聖人聿
懷德.
그러나 남편이 먼저 돌아갈 것을 누가 알았으랴, 지모를 다하여 정사를 보필하지 못하게 되
었구나. 어린 아들도 역시 일찍 죽어, 미처 소년으로서의 나이를 지나지 못하였다. 공주는
직실을 나와 눈물을 뿌렸고, 빈 방을 바라보며 수심을 머금었다. 육행을 크게 갖추고 삼종을
지켰다. 위 공백의 처 공강의 맹세를 배웠고, 제기량의 처와 같은 애처로움을 품었다. 부왕
에게서 은혜받아 스스로 부덕을 품고 살았다.
而長途未半, 隙駒疾馳, 逝水成川, 藏舟易動. 以寶曆四年夏四月十四日乙未,
終於外第, 春秋四十. 諡曰貞惠公主, 寶曆七年冬十一月四日甲申, 陪葬於珍陵
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