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문
모던 타임스, 찰리 채플린- 많이 들어 봤지만 영화를 접하기는 처음이었다. 영화는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모습들이 주를 이룬다. 찰리 채플린은 공장에서 나사를 조이는 직공이다. 다른 노동자에 비해 일에 대한 숙련도가 저조해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영화 속에 산업화된 공장에서는 기계화하지 못한 직공에 대한 어떠한 배려도 없다. 공장의 다부분의 장소는 관리자의 통제를 받는 공간이다. 심지어는 극히 개인적이어야 하는 화장실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 속의 공장은 테일러의 사상이나 포디즘이 가장 잘 반영된 형태이다. 근로자들은 끝없이 감시받고 단순작업을 지속해야 하며 일의 속도 및 작업량에 관한 어떠한 결정권도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이야기하자면 나사만 조이던 일을 하던 채플린은 장인이 되기보다는 나사만 조이는 근로자로 귀결될 확률이 높고,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는 관리자의 독단적 선택에 따라 변화된다. 경쟁회사를 압도하기 위한 관리자의 선택에 따라 식사시간을 줄이려는 모습에는 최소한의 인권에 대한 어떠한 존중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일을 쫒아가지 못하는 근로자에 대한 어떠한 배려도 보이지 않는다. 효율성(이윤추구)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능력이 저조한 자에 대해 배려를 한다는 것이 다소 모순일 수 있겠으나 해고를 시키든 재교육을 시키든 양자택일을 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영화 속의 공장에서 그런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다음은 직업병이 관한 부분이다. 영화에서 근로자역의 주인공은 상관없는 상황에서도 무조건 ‘조이려’드는 직업병을 가지게 된다. 일반적인 사회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상태는 심각하지만 영화 어디에서도(심지어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마저) 귀찮다며 화만 낼 뿐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진정한 기업의 효율성에 관해 고민해 본다. 단순히 수학적 계산만을 도입한다면 근로자에게 최소의 임금을 주고 최대한의 이윤을 내는 것이 정답이다. 하지만 사람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에 그 법칙이 항상 들어맞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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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자신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실패자를 백안시하는 분위기가 그 나라에 팽배했다는 그는 지금처럼 멋지게 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개천에서 나는 용’만큼이나 ‘날개가 부러진 봉황’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이 임금에서의 문제이다. 임금에 대한 것을 시장에만 일임해 두면 그 격차는 끝없이 벌어지고 사회적 불안의 요소가 될 것이다. 다소 자본주의적인 생각에서 벗어난 모양새일 수 있으나 누진세율의 확대를 통해 재원을 늘려, 보편적인 복지가 최대한 돌아가도록 하고 세금을 많이 내는 이들에 대해 그만큼의 대접과 우대를 해 준다면 그것이 서로가 윈-윈 하는 것이 아닐까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행복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을 따로 분리해 내서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능력과 천성이 다르기에 지위와 하는 역할의 차이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그 대우에서의 차별만큼은 철폐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모던타임스는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