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테니스의 역사와
ITF(국제테니스연맹) 조사 보고서
1. ITF(국제 테니스 연맹)
ITF는 International Tennis Federation(국제 테니스 연맹)의 약어로 현재 205개 국가의 테니스 협회로 구성되어 세계 테니스계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중심 조직이자 최고 기구이다.
직접적으로 테니스 경기를 운영·통제하고 국제 경기·국제 순회경기를 관장하며 테니스 발전 계획을 세우는 일을 한다. 올림픽 경기와 그랜드 슬램(Grand Slam)에 관여하고 있는데, 그랜드 슬램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윔블던(Wimbledon), 롤랜드 개러스(Rolland Garros), 유에스(US) 오픈, 이 네 경기가 있다.1)
그 밖에는, ATP 투어 및 WTA 투어가 대부분의 상위 클래스 대회들을 주관하며 ITF는 가장 하위 클래스 대회들의 운영을 맡고 있다. 남자테니스의 경우 1주 단위로 열리는 퓨쳐스 대회들이 이에 해당하며, 이러한 퓨쳐스 대회 시리즈를 통틀어 ITF 남자 서킷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ITF는 18세 미만 남녀 선수들의 국제 주니어 대회도 주관한다.
2002년 현재 ITF에는 198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2001년에는 데이비스 컵(Davis Cup)에 142개국, 페더레이션 컵에 103개국이 참가하였다. 본부는 영국 런던에 있다. 한국은 1948년 가입한 이후, 1960년 4월 역사상 처음으로 데이비스 컵 아시아 예선전에 출전한 이후 해마다 이 대회 예선전에 참가하고 있다.2)
▶ 명칭
국제 테니스 연맹은 1913년 3월 1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12개국 테니스 협회 회의에서 국제 론 테니스 연맹 (International Lawn Tennis Federation, ILTF)이 결성되면서 시작되었다. 1924년 `ILTF 테니스 규칙`과 함께 세계 론 테니스를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주체로 공인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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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자·귀족 사이에 유행하였다. 처음에는 맨손으로 볼을 쳤지만 차츰 라켓이 쓰이게 되었다. 이것이 영국에 소개되어 1873년 W. 윙필드 소령은 이 경기를 개량해 크리켓경기장 잔디에서 경기하는 스파이리스타이크(그리스어로 경기의 뜻)라고 이름붙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테니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코트모양은 지금의 직사각형과 달리 네트 있는 곳에서 약간 들어가 모래시계 같이 되어 있지만, 옥외의 잔디코트를 썼기 때문에 론테니스로서 급속히 보급되었다. 1875년 런던의 올잉글랜드크로켓클럽은 이 경기를 클럽의 정식종목으로 채택하였다.
1877년 봄 제1회 전영국선수권대회가 이 클럽에 의해 기획되어, 이 때문에 올잉글랜드크로켓 앤드 론테니스클럽으로 이름이 바뀔 정도였다. 이때 새로운 룰이 제정되었는데, 특히 단식코트의 크기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네트 및 포스트의 높이, 네트에서 서비스라인까지의 거리를 제외하고는 당시의 것과 같다. 이 제1회대회는 테니스계 최초의 남자단식선수권이 되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관중은 150명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이 대회의 관중이 35만에 이르고, 개최 때면 런던사교계가 윔블던으로 옮아간다고 할 만큼의 성황을 이룬다. 그 뒤 이 클럽의 스포츠활동은 론테니스로 한정시켜 한때 클럽이름에서 크로켓이라는 문자가 없어졌지만, 다시 부활되어 1889년 이래 현재의 올잉글랜드 론테니스 앤드 크로켓클럽으로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연유해 1980년 이래 국제테니스연맹 사무국이 이 클럽 센터코트 스탠드 내의 한 방에 설치되어 있다.
1878년 이후 토너먼트로 시작된 스코틀랜드선수권에서는 남자복식, 1879년부터 시작된 아일랜드선수권에서 여자단식·복식·혼합복식이 공식경기에서 세계 최초로 정식종목이 되었다. 테니스를 미국에 소개한 사람은 M.E. 아우터브리지라고 한다. 1874년 초 버뮤다에 갔던 그녀는 영국 수비대가 즐기는 테니스에 흥미를 느껴 뉴욕으로 돌아올 때 그 용구 한 벌을 가져와, 오빠 에밀리어스의 도움을 받아 그의 멤버클럽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