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결(口訣)
(1) ‘구결’의 정의
한문을 읽을 때 한문의 단어 또는 구절 사이에 들어가는 우리말
(2) ‘구결’의 내용
구결은 ‘토(吐)’라고도 한다. 예컨대 “國之語音이 異乎中國야 與文字로 不相流通”(훈민정음)에 쓰인 ‘이·야·로·’ 등이다. 이들은 대부분 조사이거나 ‘하다’·‘이다’의 활용형이다.
한문에 구결을 다는 일을 ‘구결을 달다, 토를 달다, 현토(懸吐)하다, 현결(懸訣)하다.’라고 한다. 구결을 정확히 달려면 한문 문맥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옛날 한문 학습에서는 구결을 중시하였다.
구결의 표기방법은 위의 예와 같이 한글로 하는 방법과 한자를 차용하는 방법이 있었다. 구결은 처음부터 본문의 협주로 인쇄되는 일도 있으나, 보통 인쇄된 한문의 행간에 써넣기 때문에 차용된 한자는 획수를 최소한으로 줄인 약자로 표시되었다.
이러한 약자는 이두 표기 등에도 나타나지만 구결 표기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므로 구결문자라고 하는 일도 있다.구결은 주로 문법적인 관계를 표시하는 형태들로서 문법사 연구의 자료가 되고, 한자를 차용한 표기는 문자사 연구의 자료가 되므로 국어사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다.
한편, 구결은 유교와 불교의 경전에 대한 당대 학자들의 이해와 해석을 알려 주고 있는 점에서 유교와 불교의 역사 연구에도 이용될 수 있다.
구결과 토를 이와 같이 해석하여 동의어로 보는 것은 전통적인 개념이다. 15세기 중엽에 “무릇 책을 읽을 때에 우리말로써 구절을 끊는 것을 세속에서 토라고 한다.”(세종실록 10년 윤4월 기해, 1428년)라고 한 것이라든지, “임금이 구결을 정하다.”(원각경언해 첫머리)라고 한 기록이 그것을 말한다.
그런데 1974년 ≪구역인왕경 舊譯仁王經≫ 상권의 낙장이 발견되면서, 구결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제기되었다. 하한이 14세기라고 믿어지는 이 자료에는 15세기 이후의 문헌에서 보이는 구…(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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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로 굳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중세어의 ‘입겿’은 한문의 허사인 ‘之·焉·也’(훈민정음언해천자문)를 가리키며, 줄여서 ‘겿’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입겿’은 ‘입’과 ‘겿’으로 분석된다.
이들의 어원을 ‘입’이 입[口], 또는 이에서 파생되었을 ‘잎·’(현대어 읊·의 중세어 어형), ‘겿’이 사물의 부차적인 성질을 뜻하는 중세어 단어 ‘겿’과 관련되었으리라고 추정되고 있기도 하다.
토는 구절이나 문장이 끊어지는 곳을 뜻하는 구두(句讀)의 ‘두’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이두(吏讀)·이토(吏吐)라고도 한 점과, 또 토가 들어가는 곳이 구두인 점으로 보아, 이 추정은 개연성이 큰 것으로 생각된다.
구결의 발생에 대해서는 그것을 밝힐 증거 자료가 없으므로 추측만 가능하다. 한문이 수입된 초기에는 중국어의 한자음대로 읽는 문자 그대로의 음독을 하면서, 그것을 당시의 국어로 번역하여 이해했을 것이다.
이것이 되풀이되면서 한자마다 그 의미에 해당하는 국어의 새김인 훈과 독음이 고정되고, 여기에서 한자를 훈으로 읽되, 훈이 없거나 있어도 숙어인 한자는 독음으로 읽으면서 필요한 조사나 어미를 보충하여 한문 전체를 국어의 문장이 되도록 읽는 방식이 생겨났을 것이다.
이것이 ≪구역인왕경≫ 등의 한문 행간에 써넣은 묵서가 보여 주는 훈독이다. 훈독을 지시하는 표기를 음독구결과 구별하여 ‘훈독구결’ 또는 ‘석독구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대체로 12세기 중엽이라고 추정되는 이 시기의 한문은 한자를 국어의 독음으로만 읽는 음독과 훈독의 두 가지 독법을 가졌을 것이다.
물론 한문의 이 독법은 ≪구역인왕경≫ 등의 구결 자료가 말하는 시기보다 훨씬 일찍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한문이 보급되고 그 독해력이 커지면서 음독되는 한문의 구절 사이에 훈독할 때의 조사나 어미, 곧 구결을 삽입하는 새로운 음독방식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음독을 지시하는 구결은 훈독구결과 구별하여 음독구결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보통 구결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