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고전적 이념과 그 해체
- 19세기 독일 리얼리즘 소설의 축제장면을 중심으로 -
I. 축제 연구의 방향
1990년대 중반 이후 각급 지방자치단체의 주도 아래 엄청난 수의 축제들이 기획 조직되고 실제로 운용되고 있다. 이들 축제들은 내용 면에서 볼 때 아직은 차별성이 별로 없지만 숫자상으로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와 병행하여 전문적인 축제 기획가, 축제 비평가, 축제 이론가들이 차츰 등장하고 있다. 그 동안 몇몇 민속학자들에 의해서 매우 제한적으로 진행되었던 축제 연구도 최근에 와서는 문화인류학자는 물론이고 여타 인문학자들까지 큰 관심을 보이면서 개별연구 뿐만 아니라 학제간 공동연구에 이르기까지 축제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축제가 원시공동사회에서부터 현대의 문명사회에 오기까지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문화현상의 하나라고 볼 때, 또 축제에 대한 최근의 지대한 관심을 감안할 때 그와 같은 논의는 구체적 사례에 대한 실증적 혹은 비판적 접근이건 아니면 문화연구나 지역연구에 바탕을 둔 문화학적 접근이건 모두가 다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축제 연구에 있어서 축제의 다양성과 복합적/중층적인 의미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시각만을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선 민속축제만 해도 민속학자인 레안더 페촐트의 분류대로라면 물경 15개의 부류가 있고,1) 기념축제를 포함한 제의적 축제만 해도 각종 기념식, 생일잔치, 결혼식, 장례식 기타 사교모임 등 그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 터라 어느 한 가지 축제를 염두에 두고 축제를 논의한다는 것은 시각의 일면성을 드러내는 결과가 되기 쉽다.
또 축제의 기능 문제와 관련해서도 상반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축제는 그 근원이 인간의 유희본능에 있건, 아니면 천지창조의 신화를 재현하려는 창조욕구에 있건 원시공동사회의 샤마니즘적 종교예식이나 집단놀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축제는 그 생성유래가 보여 주듯이…(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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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유희성과 진지성, 자유와 질서의 넘나들기 현상을 지칭한 것으로 축제의 존재양식 자체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외양상 차이가 있어 보이는 의례적 축제와 카오스적 축제, 즉 제의와 카니발을 포괄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요아킴 퀴헨호프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는데, 이 또한 축제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축제는 언제나 일탈과 법칙, 질서와 카오스, 본능과 금지, 엄숙과 유희 사이를 변증법적으로 중재한다. 어느 한 측면에 더 치우친 축제유형이 있다손 치더라도 다른 한 측면은 엄연히 존재한다. 〔...〕지속적인 열광과 도취, 영원한 오르기아는 있을 수 없다. 만약에 축제와 일상의 경계가 무너져 내린다면 일상도 축제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7)
축제의 “경계현상”으로서의 존재양식과 그 의미는 문학작품, 특히 리얼리즘 소설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축제장면은 대개의 경우 이야기의 전개과정에서 삽입되기 마련인데, 소설의 전체 구조에서 보면 일상에서 축제로 넘어 갔다가 축제가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회귀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축제장면 그 속에도 비축제적 요소가 들어가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축제의 경계현상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문학 텍스트, 특히 19세기 독일 리얼리즘 소설 속에 묘사된 축제의 장면들을 소설의 틀 속에서 분석함으로써 축제가 제시하고 있는 이념과 그것의 해체 과정을 조명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내가 여기서 축제의 “이념”이라고 하는 것은, 르네상스 이후 진행된 문명화와 계몽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극도로 억압받던 축제가, 최문규의 정확한 표현대로, “일상적 존재와 삶에 대립하는 유토피아적 상태에 대한 동경과 향수에 대한 은유로 작용하면서”8) 이상화된 것을 말한다. 때문에 그것은 축제적 상황이 일상적인 삶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라는 강한 희망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