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신론 논쟁에 대한 하이네의 비판과 그의 진보적 범신론
Ⅰ. 서 론
범신론이란 “신이 모든 사물 안에 살아있고 우주 자체의 생명이어서, 결국 신과 살아있는 피조물인 자연이 일치한다는 세계관 die Weltanschauung, nach der Gott in alllen Dingen lebt, ja das Leben des Weltalls selbst ist, so daß Gott und die lebendige, sch?pferische Natur zusammenfallen.”1)을 뜻한다. 중세이래로 범신론은 자연과 신의 질적인 관계를 엄격히 구별하던 유대-기독교적 창조설에 준해 신비주의로 이해되었지만, 근대에 와서 스피노자의 철학적 체계에 의해 새로 태어났다. 그에 따르면 자연 만물은 신의 형태에서 비롯되며, 따라서 세계를 벗어난 신은 있을 수 없으며 신과 우주 전체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로써 범신론은 세계와 신의 분리를 지양했다. 이것은 18세기 스피노자에 대한 논쟁을 거쳐 점차 동시대인들에게 환영받게 되면서, 19세기에는 종교, 철학 및 예술에서 폭넓게 구체화되었다. 이 흐름 안에 하이네의 범신론이 자리한다.
1830년대에 하이네는 기독교적 이신론에 대항하여 범신론을 주장했다. 그 안에서 기독교 문화에 의해 억압된 인간의 해방 Emanzipation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2) 그가 주장하는 범신론에 따르면, 무생물에서부터 생물, 하등동물에서 고등동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은 신의 신성함을 지니고, 인간은 신의 질적 가치를 가장 많이 지닌다. 프랑스의 3월 혁명 이후에 제기되는 그의 범신론은 시대의 현실적인 함의를 갖는 바, 신은 결코 무(無)에서 세계를 창출하지 않았다는 것과 각 사물들은 자신 안에 정도의 차이에 따라 신성을 가졌다는 것이다.3) 이러한 ‘유물론적인’ 관점에 따르면 신은 모두에 앞서 존재한 어떤 것이기에, 자연 사물은 신 없이 존재할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일체의 것은 신 안…(생략)
Ⅱ. ‘위대한 판 Pan의 죽음’과 새 시대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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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이네는 그리스 시대를 파멸시킨 기독교가 지배하던 그 시대 역시 종말에 이르렀고 새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예견했다. 물질과 정신으로 이분된 세계는 다시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이를 위해 범신론에 의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신을 일체로 것이 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가치가 되어야 했다. 이런 맥락에서 하이네는 그리스ㆍ로마시대 이후로 인류사에서 또 하나의 ‘위대한 판 Pan신의 죽음’을 예고했다.
‘판 Pan’ 신은 목동 신이자 사냥 신으로서 인간과 동물의 중간자를 뜻한다.7) 그는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인 동시에 춤과 가무를 즐겼다. 후에 많은 작가들은 그를 자연과 예술에서 감성적인 자유와 통일을 상징하는 신으로 형상화했다. 그러나 모세의 등장으로 그리스ㆍ로마 시대가 소멸되었을 때, “위대한 판은 죽었다! Der große Pan ist tot!”8)고 외쳐졌다. 이 때 ‘위대한 판의 죽음’이란 바로 그리스ㆍ로마 시대의 몰락을 뜻하는 것이다. 하이네는 여기서 더 나아가 ‘판의 죽음’을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이해했다. 그는 자신의 시대와 관련해서 ‘판의 죽음’을 기존의 지배세력의 몰락, 즉 기독교의 몰락으로 보았던 것이다.
나는 혼자 노을지는 해변가를 거닐었다. 주변은 엄숙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높이 드리워진 하늘은 고딕양식의 교회지붕과도 같았다. 수없이 많은 등불이 걸려있듯 별들이 떠있었다. 그러나 음울하게 몸을 떨며 빛나고 있었다. 물오르간처럼9) 바다 물결은 솨솨 소리를 내었고 고통스럽도록 절망에 빠져있는가 하면 때때로 당당히 합창하듯 몰아쳤다. 내 머리 위 허공에는 줄지어 이어진 하얀 구름형상들이 승려들처럼 몸을 깊이 숙이고 슬픔에 찬 눈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것은 슬픈 행렬이었다... 분명 그것들은 한 시신을 뒤쫓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를 묻으려는 것인가? 누가 죽은 것인가? 나는 중얼거렸다, 위대한 판이 죽은 것인가?10)
Ich wandelte einsam am Strand in der Abendd?mmerung. Ring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