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gers의 ‘완전히 기능하는 인간’
1. Rogers의 생애
Carl Rogers(1902~1987)는 인본주의 심리학의 대변자로서, 반세기동안 발달시켜온 자신의 사상들을 잘 반영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한 개인으로서 또 전문가로서 미지의 영역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의심하는 자세를 취했으며, 변화에 깊이 개방되어 있었다. Rogers는 엄격하면서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분위기의 집안에서 6남매 중 4째로 태어났다. Rogers는 그의 가족 분위기가 친밀하고 따뜻한 관계였지만, 엄격한 종교적 규범이 있는 집안에서 자랐다. 놀이는 억제 당했으며, 청교도 윤리는 칭찬받았다. 12살 때 농장으로 이사를 했는데 이사의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가 농장에 있고 싶은 이유도 있었지만 사춘기의 자녀들을 도시의 유혹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고자 한 게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소년 시절은, 사회적인 관심보다 학문에 관심을 쏟은 외로운 시절이었다.
대학시절 초기, 그의 관심과 전공은 농학과 역사학이었다. 그러다가 대학교 2학년 때, 목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했으며, 3학년 때는 북경에서 열린 세계기독학생연합(World Student Christian Federation)회의에 참석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다. 왜냐하면 이 경험은 그의 사고를 확장시켰으며,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이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때를 심리적으로 독립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처음으로 부모의 종교적 사고로부터 크게 탈피했으며, 더 이상 부모와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대학원 시절도, 의심하고, 결정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가 배웠던 종교적 교리에 대해서 의심을 품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그 세미나에서의 학생 지향적 수업은 그가 그 세미나를 버리고 심리학을 공부하도록 하는데 일역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자유스런 field를 원했던 로저스는 다시 전공을 바꾸는데 학교에서 공부…(생략)
2. 인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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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년에, 그는 캘리포니아 La Jolla에 있는 서부행동과학 연구소(Western Behavioral Sciences Institute)의 연구팀과 합류했다. 거기에서 그는 인간관계에서의 자신의 능력을 개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상담했다. 여기에서 그는 1960년대의 참만남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1968년에는 몇몇의 동료와 함께 라욜라에 인간행동연구소(Centers For Studies of Person)을 설립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그의 시간의 대부분을 인간중심 집단치료의 연구와 저술에 바쳤다.
Rogers는 심리치료에서의 인본주의 운동을 최초로 창안, 발전시켰으며, 연구를 선도했고, 심리학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 영향력을 끼침으로써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의 인생의 마지막 15년 동안 Rogers는 정책입안자, 지도자, 또는 갈등집단을 훈련함으로써 정치에 인간 중심적 접근을 적용하기도 하였다. 그가 가장 힘썼던 분야는 인종간의 긴장완화와 세계평화였는데, 이러한 업적으로 인해 그는 죽기 바로 얼마 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지목되었다. Rogers는 1987년에 낙상하여 허리에 골절상을 입은 후 수술이 끝난 날 밤, 삶을 마감했다. 몇몇 회고록에서 Rogers는 85년간 그의 인생은 자신이 원하고 꿈꿔왔던 것 이상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나는 내가 언제 죽을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나의 85년간의 인생은 충만되고 흥미로왔다.”고 덧붙였다.
Rogers의 영향력에 대한 평가에서 Cain은 치료자와 저자와 인간은 동일한 사람이라고 기술하였다. Rogers는 가지각색의 상환에 처한 매우 다양한 인간을 다루는 그의 이론에 맞는 인생을 살았다. 그의 인간에 대한 믿음은 그의 이론의 발달과 그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Rogers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았고, 자신의 신념에 안심했으며, 진실하게 삶 살았다. Cain에 의하면, 그는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의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2. 인간관